'애정황후 왕씨'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후비이며, 후에 황후로 추존된 인물이다. 그녀의 본명은 왕씨(王氏)이며, 생년은 1851년으로 알려져 있다. '애정황후'라는 호칭은 그녀의 남편인 고종이 그녀에게 깊은 사랑과 애정을 품었음을 나타낸다.
왕씨는 1866년 고종과 결혼하여, 1867년에는 고종의 헌의와 함께 정식으로 왕비로 봉해졌다. 그녀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고종이 통치할 당시 왕위를 이을 여러 자녀를 두었으나, 대부분의 자녀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애정황후는 조선 말기 혼란한 시기에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녀는 외교 및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러시아와 일본과의 외교 문제에서도 남편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895년 이완용과 일본의 압박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녀는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
1895년, 일본의 간섭과 음모로 인해 애정황후는 일본 공사관으로 끌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후 일본의 직접적인 간섭이 강화되었고, 그녀의 죽음은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애정황후는 사망 후 1902년에 황후로 추존되었으며, 그녀의 생애와 비극은 이후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는 조선 후기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왕실의 위신과 국가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