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晏嬰, ?~기원전 500년)은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중(仲)이며 흔히 안자(晏子)라고 불린다.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의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제나라를 강국으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뛰어난 지혜와 달변, 그리고 엄격한 절개로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에까지 큰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특히 경공 시절에는 간언을 서슴지 않으며 군주의 실정을 바로잡는 데 힘썼다.
안영의 생활 태도는 근검절약으로 요약된다. 그는 일국의 재상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낡은 갓과 옷을 입고 다녔으며 식사 때에도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당시 사치에 물든 지배층에게 경종을 울렸으며, 백성들에게는 깊은 신뢰를 얻는 바탕이 되었다. 그는 정치를 함에 있어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겼으며, 형벌보다는 덕치와 예치를 강조했다.
외교 분야에서 안영은 특유의 기지와 언변으로 제나라의 국격을 높였다.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키가 작은 그를 조롱하기 위해 초나라 왕이 성문 옆의 작은 개구멍으로 들어오게 하자 "개나라에 갈 때는 개구멍으로 가지만, 대국에 갈 때는 대문으로 가는 법"이라고 응수하여 왕의 사과를 받아낸 일화가 유명하다. 또한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환경이 사람의 성품에 미치는 영향을 설파하며 초왕의 무례를 꾸짖기도 했다.
안영은 국가의 기강을 잡기 위해 과감한 책략을 쓰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이다. 공이 너무 커서 오만방자해진 세 명의 장수를 제거하기 위해, 그는 두 개의 복숭아를 주고 스스로의 공을 따져 먹게 함으로써 그들이 서로 시기하여 자결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잔혹한 숙청이 아니라, 군권이 비대해져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결단으로 평가받는다.
안영의 사상과 행적은 후대에 『안자춘추(晏子春秋)』라는 책으로 정리되어 전해진다. 이 책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일화와 정치적 조언들이 담겨 있으며, 유가와 묵가 사상의 가교 역할을 하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공자는 안영을 두고 "동료와 사귐에 있어 오래될수록 더욱 공경했다"고 칭송했으며, 사마천은 『사기』에서 자신이 만약 안영의 마부가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삼겠다고 기록할 정도로 그를 흠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