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샤(Amaziah)는 남유다 왕국의 제9대 왕으로, 요아스 왕의 아들이다. 기원전 8세기경 약 29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사람 여호앗단이다. 아마샤는 부왕 요아스가 신복들에 의해 살해된 후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며, 권력을 장악한 뒤 부왕을 죽인 반역자들을 처형함으로써 왕권을 공고히 하였다. 이때 그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범죄한 당사자만을 처벌하고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는 공의를 실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샤의 초기 통치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그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북이스라엘에서 용병 10만 명을 고용하여 에돔 정벌을 계획했으나, 하나님의 사람의 권고를 듣고 용병들을 돌려보냈다. 이후 유다 군대만을 이끌고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군대 1만 명을 죽이고 셀라(Sela)를 점령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점령지의 이름을 '욕델'이라 명명하며 군사적 업적을 쌓았으나, 승리 이후 에돔의 우상들을 가져와 숭배하는 영적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돔 승전 이후 교만해진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대결을 청했다. 이스라엘의 요아스는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를 들어 경고했으나, 아마샤는 이를 무시하고 전쟁을 강행했다. 결국 벧세메스 전투에서 유다 군대는 참패했고 아마샤는 사로잡히는 수모를 겪었다. 북이스라엘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 약 400규빗을 허물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 및 인질들을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마샤의 정치적 권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실추되었다.
패전 이후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의 요아스가 죽은 뒤에도 15년을 더 살았으나, 예루살렘 내에서 그를 반대하는 세력이 결집하여 반란이 일어났다. 그는 반란군을 피해 라기스로 도주했으나, 끝내 추격해온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의 시신은 말에 실려 예루살렘으로 운구되어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왕위에 올랐다.
성경적 평가는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않았다고 전한다. 특히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여전히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게 방치한 점과 말년에 보여준 교만과 우상 숭배가 그의 통치에 오점으로 남았다. 그는 율법을 준수하려 노력한 왕인 동시에, 성공 뒤에 찾아온 자만심으로 인해 몰락한 지도자의 전형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