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년경~428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학파 철학자이자 아테네에 철학을 처음으로 전파한 인물이다. 소아시아의 클라조메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성년기에 아테네로 이주하여 약 30년 동안 머물며 정치인 페리클레스와 깊은 교분을 맺었다. 그는 자연 현상을 신화적 해석이 아닌 합리적이고 물리적인 원리로 설명하려 노력했으며, 이는 당시 아테네의 지적 풍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단일한 원소를 부정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종자(seeds)'라고 불리는 무수히 많은 미세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이 종자들은 질적으로 다양하며 무한히 분할 가능하다. "모든 것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그의 원리는, 어떤 물질이라도 그 안에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단지 가장 비중이 큰 성분이 해당 물질의 겉모습과 성질을 결정한다는 논리다.
아낙사고라스 철학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는 원동력으로 '누스(Nous, 지성)'를 상정했다는 점이다. 그는 물질 자체는 수동적이지만, 순수하고 독립적인 존재인 지성이 태초의 혼돈 상태였던 종자들에 회전 운동을 일으켜 질서 있는 우주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지성의 개념은 물리적 세계관에 질서적 요소를 도입한 최초의 시도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천문학적 견해에 있어서도 그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그는 태양을 신이 아닌 뜨겁게 달궈진 돌덩어리라고 주장했으며, 달은 지구와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빛을 반사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월식과 일식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인 자연주의적 설명은 당시 아테네의 전통적인 종교관과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불경죄로 기소되어 아테네를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페리클레스의 도움으로 아테네를 탈출한 아낙사고라스는 람프사코스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사후에도 자연 탐구자로서 높은 명성을 누렸으며, 그의 합리주의적 태도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지성이라는 원리로 설명함으로써 서구 철학사에서 이성적 사유의 지평을 넓힌 선구자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