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멸작전(燼滅作戰)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이 중국의 항일 근거지를 말살하기 위해 전개한 잔혹한 토벌 작전을 일컫는다. 이 작전은 중국 측에서 '모두 죽이고, 모두 태우고, 모두 빼앗는다'는 의미의 삼광작전(三光作戰)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군은 1940년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이 전개한 백단대전(百團大戰)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자, 이에 대한 보복이자 항일 세력의 기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전술을 본격화하였다.
작전의 실질적인 설계와 집행은 북지나방면군 사령관이었던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에 의해 주도되었다. 일본군은 '적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항일 유격대가 활동하는 지역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물자와 인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민간인 마을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유격대와 민중 사이의 유기적인 결합을 끊어놓기 위한 이른바 '망 제거' 전략의 일환이었으며, 민간인을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여 섬멸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작전의 구체적인 양상은 극도로 파괴적이었다. 일본군은 점령한 마을의 모든 가옥을 불태우고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였으며, 저항 여부와 관계없이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또한 우물을 메우거나 독을 풀어 생존 기반을 완전히 파괴하는 초토화 전술을 병행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군사적 행동을 넘어 전쟁 범죄의 범주에 속하는 반인륜적 행태였으며, 화북 지방의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신멸작전의 결과로 중국 북부 지역의 인구는 급감하였고 경제적 토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이 작전으로 인해 희생된 중국인의 수는 수백만 명에 달하며, 수많은 마을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군의 기대와는 달리, 이러한 무자비한 탄압은 오히려 중국 민중의 대일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군의 잔혹 행위에 분노한 농민들이 대거 공산당과 유격대에 합류하면서 항일 투쟁의 동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신멸작전은 일본군에 일시적인 군사적 성과를 가져다주었을지는 모르나,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작전으로 평가받는다. 민심을 잃은 군대는 점령지를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고, 이는 이후 중국 공산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민중의 지지를 얻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신멸작전은 근대 전쟁사에서 군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가장 끔찍한 초토화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