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라(Sibila)는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예루살렘 왕국의 여왕이었다. 예루살렘 왕국은 1099년부터 1291년까지 존재한 기독교 왕국으로, 제1차 십자군 전쟁 이후 설립되었다. 시빌라는 1160년에 태어났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예루살렘의 첫 번째 크리스찬 왕인 불레와( Balian)이며, 어머니는 그리면의 왕국의 왕녀였다.
시빌라는 그리스도교적 혈통과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결혼은 정치적인 동맹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1176년, 예루살렘 왕국의 왕인 아마리카(Amalric)와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고,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의 자녀인 볼리오( Baudouin)와 시빌라( Sibylla)를 낳았다.
그녀의 남편 아마리카가 1174년 사망한 후, 시빌라는 그들의 아들 볼리오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왕국의 통치에 관여하게 된다. 그러나 시빌라는 정치적 권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있었던 시기에 살았고, 그녀의 통치 시기에는 왕국의 내외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1186년, 시빌라는 자신의 동생인 리온(Lionel)과 결혼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 볼리오가 1185년 사망하면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 계승 문제로 갈등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시빌라는 자신의 딸 시빌라를 왕국의 새로운 여왕으로 세우려 하였고, 이는 왕국 내의 많은 귀족들과의 갈등을 초래했다.
시빌라는 1190년 10월에 왕국의 여왕으로 공식 서임되었으나,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왕국은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그녀의 통치 아래에서의 갈등은 결국 십자군 전쟁의 격화를 촉발시켰고, 예루살렘 왕국은 1291년까지 존속하게 된다.
시빌라는 예루살렘 왕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여성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녀의 정치적 야망과 탁월한 지도력은 당시 왕국의 상황을 이끌어 갔다. 그녀의 통치 기간은 예루살렘 왕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의 사회 및 정치적 구조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