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나씨(淑儀 朴氏, 1536년~1595년)는 조선 중기의 왕비로, 명종(明宗)의 소혼전(昭獻殿)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羅州)로, 나씨는 순조(純祖) 때의 왕비인 숙종을 배출한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556년, 명종과 결혼하여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의 나씨는 명종의 후궁이자, 이복동생인 왕자 대광정과 대왕대비 및 왕세자 대군을 두었다. 명종 재위 기간 동안, 그녀는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며 자신의 세력과 위상을 높였다. 특히, 그녀는 명종의 후궁들과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도 왕비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명종의 즉위를 지원하였다.
그녀는 왕비로서 뛰어난 정치 감각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명종의 후원으로 출세한 여러 신하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등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567년 명종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그녀는 곧바로 궁중 내의 권력 다툼과 밀착하게 되었다.
사망한 후, 숙의 나씨는 명종의 명에 따라 현릉(顯陵)에 합장되었으며, 그녀의 업적과 일생은 조선시대 왕비들의 정치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남아있다. 그녀는 궁중 내 권력 구조 및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논의와 연구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