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핵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되어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건은 소련에게 핵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이는 냉전 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서로 간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소련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비밀리에 여러 연구소와 실험시설을 설립하고, 전문가들을 집결시켰다.
소련의 핵개발 초기 단계는 독일의 과학자들, 특히 오토 하른버그와 같은 과학자들의 기술이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나치 독일에서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소련의 원자력 프로그램에 기여했다. 1949년 8월 29일, 소련은 첫 번째 원자폭탄을 성공적으로 deton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다.
소련의 핵무기 개발은 레오니드 브레지네프 정권 하에서도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소련은 수소폭탄 개발에도 성공하였고, 각종 핵무기 시스템의 다양화를 이루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미사일 기술에서도 큰 진전을 이루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배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군비 확장은 미소 간의 군비 경쟁을 더욱 격화시켰고, 이는 세계 각국의 안보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소련의 핵개발은 경제적 부담과 국제사회의 비판을 초래하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과도한 군비 지출은 소련의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었다. 이로 인해 국제법과 조약을 통해 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이 이루어졌다. 결국,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소련이 보유한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은 여러 독립 국가로 분산되었고, 그 후 국제사회는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