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리 고분군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위치한 가야 시대의 대규모 무덤군이다. 사적 제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주 시가지 동남쪽에 솟아 있는 성산(星山)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과거 성주 지역을 거점으로 형성되었던 성산가야(벽진가야) 지배층의 묘역으로 추정되며, 가야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고분군은 성산의 능선을 따라 수십 기의 대형 봉토분이 줄을 지어 분포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수백 기에 달하는 중소형 무덤이 흩어져 있다. 무덤의 내부 구조는 주로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 형식을 띠고 있으나, 시기에 따라 횡혈식 석실묘(굴식 돌방무덤)와 횡구식 석실묘(앞트기식 돌방무덤)도 확인된다. 이러한 묘제의 변화는 가야 고유의 장례 문화가 점차 신라의 영향을 받아 변천해 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성산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부터 1920년 사이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일부 대형분이 발굴되었으나, 보고서 작성이 미비하고 유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등 한계가 있었다.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과 영남대학교 박물관 등 여러 기관에 의해 보완 조사가 진행되면서 고분군의 전체적인 규모와 성격, 축조 시기 등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발굴 결과 고분 내부에서는 풍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로는 성주 지역만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굽다리접시(고배)와 긴목항아리(장경호) 등이 다량 발견되었으며, 철기류로는 환두대도(고리자루칼), 화살촉, 갑옷 등의 무기류와 말안장, 등자와 같은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금제 및 은제 귀걸이와 같은 화려한 장신구들은 당시 지배층의 경제적 위상과 높은 금속 공예 기술을 입증한다.
성산리 고분군은 성산가야의 실체를 증명하는 핵심 유적일 뿐만 아니라, 5~6세기 가야와 신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출토 유물 중 일부는 신라 양식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어, 성주 지역이 가야 연맹의 일원에서 점차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어 가는 정치적 변동 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한반도 남부 지방의 고대사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