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西太后, 1835-1908)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광서제의 모후로, 청나라 후기의 정치적 실세였다. 본명은 위안란(嫻), 후에 서태후라는 호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황제의 비인 귀비로 시작해, 여러 정치적 음모와 결혼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결국에는 태후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서태후는 청나라의 쇠퇴기에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으며, 그녀의 통치 아래에서 중국은 내외부의 여러 위기를 겪었다. 그녀는 병자운란(丙子事變)과 같은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고자 했지만, 종종 보수적인 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개혁과 변화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또한 1900년의 의화단 운동과 같은 민란에 개입하여, 서양 열강과 일본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강화했지만, 결국에는 볼턴과 같은 외세의 압박에 굴복하게 된다.
서태후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후원자로도 알려져 있으며, 특히 궁중에서의 전통 예술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생애 후반에는 실질적인 권력을 잃고, 광서제가 어린 시절에 왕위에 오르도록 하여 청나라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태후는 1908년 사망한 후, 그녀의 통치와 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며, 그녀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