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호

서장호(徐章鎬, 1888~1970)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대동 출신인 그는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사회의 항일 의지를 결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하며 일제의 무단 통치에 맞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초, 서장호는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 선언 소식을 접한 뒤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독려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3월 4일, 그는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고, 이 시위는 인근 지역으로 항일 열기가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만세 시위 주도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된 서장호는 혹독한 취조와 고문을 겪어야 했다. 이후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며, 옥고를 치르며 고초를 겪었다. 그는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일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출옥 후에도 서장호는 지역 사회에 머물며 민족 의식을 함양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그는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평안도 지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서장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그가 보여준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