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구(徐有圭, 1560-? )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본관이 강릉으로, 성은 서씨이며, 자는 용석, 호는 봉계이다. 서유구는 명필이자 뛰어난 성리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문학적 기량은 당시에도 매우 높게 평가받았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문체와 깊은 철학적 사유가 결합된 그의 작품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유구는 특히 '양명학'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현실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도덕적 원리를 강조하며, 개인의 인격 수양을 중요시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당시 조정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많은 제자들을 두어 그의 학문을 전파하였다. 그는 또한 후에 '서유구 전서'를 저술하여 그의 철학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의 저작 중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과 농사에 대한 지식을 정리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조선시대 농업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후에 농업 관련 연구와 시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임원경제지'는 그 시대의 농업과 경제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며, 후세의 농업학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서유구의 삶과 사상은 이후 조선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저작들은 지금도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그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후대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다. 그의 사상은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