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돈(徐相燉, 1832년 ~ 1902년)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초기의 정치가이자 근대화 운동가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자는 경호(景浩), 호는 정재(靜齋)이다. 그는 19세기 중반 조선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깊이 관여하며, 개화운동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했다.
서상돈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대원군의 정치적 변화와 갈등 속에서도 활동하였다. 그는 근대적 관념과 서양 문물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정책을 지지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당시 보수적 세력과 충돌하기도 했다.
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그는 비공식적인 학교 설립 및 교육 기관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서양과의 외교 관계 강화를 위해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서상돈은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의 국익을 수호하려 했다.
서상돈은 다양한 저서와 논문을 통해 개혁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이는 후세의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과 활동은 조선 후기 개화파 정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생애와 활동은 당시 사회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상돈은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