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徐敬德, 1489~1546)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문인으로, 조선 성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원섭(元燮)이고, 호는 도천(道人)이다. 그는 16세기 초반, 조선 왕조의 사상과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힘썼다.
서경덕은 유년 시절부터 학문에 대한 열의가 남다른 일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성리학의 전통을 계승하며 대유학파의 이론을 바탕으로 학문을 연구하였다. 여러 저서와 강의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며, 그 중에서도 '대학연의'와 '중용발휘' 같은 저작물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저작들은 당시 유학의 주요 개념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또한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서경덕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철학적 사유와 도덕적 관점을 강조하며, 유학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그의 교육 방법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습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제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제자들 중 많은 이들이 후에 조선 사회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서경덕의 사상과 학문적 기여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실천적 유학을 강조하며 도덕적 삶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덕분에 후속 세대의 유학자들이 이를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키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 시대 유학의 발전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