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의 굴욕(三田渡의 屈辱)은 1636년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의 국권과 자존심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후 조선의 외교 및 내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삼전도에서의 항복은 역시 나라의 불운한 역사로 여겨진다.
삼전도의 굴욕은 1636년 인조의 즉위 이후 발생한 정묘호란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당시 청나라의 만주족이 세력을 확장하고, 조선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 청나라의 공격에 대해 조선은 초기에는 저항하였으나, 전투가 지속되면서 점차 전세가 불리해졌다. 결국, 청나라는 서울을 포위하고 강력한 압박을 가하게 되었고, 인조는 독자적인 저항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인조는 1637년 삼전도에서 청나라 군과의 회담을 통해 항복을 결정하게 된다. 이 회담에서 조선의 임금은 자신의 왕권을 포기하고, 청나라의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청나라의 황제와 대면하며 참담한 항복식을 치르게 되었다. 이 모습은 조선 역사에서 매우 부끄러운 장면으로 회자되며, 이후에도 많은 언급이 이어졌다.
삼전도의 굴욕은 조선의 후속 역사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청나라의 지배 아래에서 조선은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큰 제약을 받게 되었고, 이는 결국 조선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도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삼전도를 통해 조선은 외세의 압력에 무릎 꿇은 전례를 남겼고, 이 사건은 후에 다른 외국 세력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교훈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