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1942)는 일본의 시인이자 작가로, 일본 근대 시 문학의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인 문어체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구어를 시의 언어로 정착시킨 구어 자유시의 확립자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고독, 공포, 그리고 병적인 섬세함을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내어 '일본 현대 시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1886년 군마현 마에바시시의 부유한 의사 가정에서 태어난 사쿠타로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였으나, 학업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여러 대학을 중퇴하는 방황기를 겪었다. 이 시기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깊이 몰입하였으며, 특히 만돌린 연주와 작곡에 능했다. 이러한 음악적 감수성은 훗날 그의 시가 지닌 독특한 리듬감과 운율의 기초가 되었으며, 서구적 감각과 동양적 정서를 결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17년에 발표한 첫 시집 『달에게 짖다(月に吠える)』는 당시 일본 문단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작품집은 기존의 서정시가 지녔던 관습적인 틀을 깨고, 인간의 신경증적인 불안과 생리적인 감각을 예리하게 묘사하여 상징주의 시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어 1923년에 발간한 시집 『푸른 고양이(青猫)』에서는 허무와 우울의 정서를 더욱 깊게 파고들며 현대인의 소외된 자아를 탐구했다.
사쿠타로의 시 세계는 육체와 영혼의 불일치, 그리고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느끼는 존재론적 고통을 주제로 삼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현상을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데 탁월했으며, 이는 후대 일본 시인들에게 표현의 자유와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시론집인 『시의 원리』를 통해 자신의 문학 철학을 체계화하며 현대 시학의 이론적 토대를 닦았다.
말년의 사쿠타로는 아포리즘과 철학적 수필 집필에 몰두하며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다 1942년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단순히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 의식의 심연을 드러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은 일본 현대 문학의 고전으로 추앙받으며 수많은 연구와 재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