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司馬懿, 179년 ~ 251년)는 중국 삼국 시대의 중요한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로, 위나라의 기초를 다진 인물 중 하나이다. 자는 중경(仲景)이며, 하남성의 평원(平原)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마렴(司馬廉)과 왕씨(王氏)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그의 가족은 기원전 2세기부터 벼슬을 해온 명문 집안이다.
사마의는 젊은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유능한 무장과 정치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조조(曹操)의 신뢰를 받으며 중요한 군사 작전에 참여하였고,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여러 차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220년, 조조 사후 위나라가 수립되자, 사마의는 위나라 법궁 밑에서 실권을 쥐게 되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행적 중 하나는 249년, 정권을 장악하는 쿠데타인 '행정대란'(𠑮政之變)이다. 그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조조의 손자 조비(曹丕)의 재위 아래에서 권력을 강화하고, 결국 자신의 가족이 위나라의 실권을 이어가도록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마의는 위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올랐으며, 이후 그의 후손들은 위나라를 넘어 진나라를 세우게 된다.
사마의는 전쟁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위나라의 내정을 안정시키고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 방법은 때때로 잔혹한 면모를 보였고, 내외의 반발도 샀다. 그의 정치적 조작 겨냥은 적들을 제거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충성과 배신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의 사후, 사마가(司馬家)와 그의 후손인 사마천(司馬氏)은 위나라를 뒤이어 진(晉)나라를 세우며,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마의의 정치적 및 군사적 유산은 그의 후손들에게 이어졌고,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