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권은 전쟁, 천재지변, 내란 등 국가의 존립과 헌법 질서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통치권자가 일상적인 법치주의의 제약을 벗어나 행사하는 비상수단을 의미한다. 이는 헌법이 예정한 정상적인 법 집행 절차로는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인정되는 예외적 권한이다. 국가비상권은 국가의 존속과 헌법의 수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지니며, 주권 국가가 가진 고유의 권능으로 이해된다.
비상권에 관한 이론적 배경은 근대 헌법학의 형성기부터 논의되어 왔다. 존 로크(John Locke)는 '대권(Prerogative)' 개념을 통해 성문법이 미처 규정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 없이도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설명하였다. 또한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주권자란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정의하며, 비상권의 행사가 법의 공백 상태에서 결단되는 통치권의 본질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비상권이 단순히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법 질서인 헌법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초법적 내지 헌법적 권능임을 시사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가비상권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규정되어 있다. 헌법 제76조와 제77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권, 그리고 계엄선포권이 대표적이다.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권은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시에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발동하며, 계엄선포권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군사적 필요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된다. 이러한 권한은 법률의 효력을 가지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지닌다.
비상권은 그 강력한 성격으로 인해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상권 행사에 엄격한 요건과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비상권 행사는 국회에 지체 없이 보고하여 승인을 얻어야 하며, 승인을 얻지 못한 경우 그 효력은 상실된다. 또한 국회의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할 경우 대통령은 이를 반드시 해제해야 한다. 이는 비상권이 헌법 질서의 파괴가 아닌 회복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반드시 사법적·정치적 통제 아래 놓여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비상권은 법치주의와 국가 보위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비상권은 법치주의의 일시적 정지를 수반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법치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을 띤다. 비상권의 행사는 필요최소한의 원칙에 따라야 하며, 위기 상황이 해소된 후에는 즉시 정상적인 헌법 질서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 헌법학의 통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