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조약(奉天條約)은 1924년 9월 20일, 소연방(소련) 정부와 중국 동북 지역의 실권자인 장쭤린의 봉천 군벌 정부 사이에 체결된 협정이다.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 동삼성 자치정부와 소연방 정부 간의 협정'이다. 이 조약은 당시 중국의 중앙정부였던 북양정부와 소련이 체결한 '중소 해결 현안 원칙에 관한 협정'이 봉천 지역에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소련이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장쭤린과 직접 교섭하여 맺은 별도의 합의였다.
당시 중국 동북 지방인 만주는 장쭤린이 이끄는 봉천 군벌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그는 베이징의 중앙정부와 대립하며 사실상 독자적인 주권 행사를 하고 있었다. 특히 만주 경제와 군사의 핵심 요충지였던 중동철도(C.E.R)의 관리권 문제는 소련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소련은 북양정부와의 협정만으로는 장쭤린의 협조 없이는 철도의 안정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소련은 실리적인 관점에서 지방 정권인 봉천 군벌을 외교적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고 직접적인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조약의 핵심 내용은 중동철도의 공동 관리와 운영에 관한 사항이다. 철도는 중소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철도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회와 감사 위원회의 인원 구성 및 운영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또한 소련은 과거 제정 러시아 시절에 획득했던 불평등한 특권 중 일부를 포기하고, 철도 구역 내의 행정권, 사법권, 경찰권 등 주권적 권리가 중국 측에 있음을 명시했다. 양측은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선전 활동이나 단체를 지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 조약은 중동철도의 회수 및 운영 기간에 대해서도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존 러시아가 가졌던 80년의 운영권을 60년으로 단축하고, 중국 측이 철도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하여 중국의 권익을 일부 회복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철도 운영의 실무권과 주요 보직은 소련 측이 여전히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어 갈등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장쭤린은 이 조약을 통해 만주 내에서 자신의 통치력을 공고히 하고, 소련과의 관계를 정립함으로써 일본과의 외교적 저울질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봉천 조약은 소련이 중국의 중앙정부를 우회하여 지방 군벌 정권을 독립적인 외교 주체로 인정한 특이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는 북양정부의 외교적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나, 소련으로서는 만주에서의 실질적인 이권을 확보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조약 체결 이후에도 철도 운영권과 관리 방식을 둘러싼 양측의 해석 차이와 마찰은 지속되었으며, 이는 훗날 1929년의 봉소전쟁(만주 분쟁)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