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재인은 조선 후기 순조 무렵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판소리의 주요 유파 중 하나인 중고제(中古制)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본관은 면천(沔川)이며, 충청도 홍주(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각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판소리의 기틀을 닦는 데 기여한 초기 판소리 역사의 핵심 인물이다.
그의 소리는 중고제의 전형적인 특징인 평조(平調) 중심의 담백하고 정갈한 창법을 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재인은 기교를 지나치게 부리기보다는 가사의 전달력을 높이고 선율의 골격을 명확히 하는 정통적인 방식을 고수하였다. 특히 그는 '석화제(石花制)'라는 독특한 선율 체계를 발전시켰다고 언급되는데, 이는 훗날 여러 명창에게 전수되어 판소리의 음악적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복재인은 《심청가》와 《춘향가》에 특히 능통하였으며, 그의 소리는 장식음이 적으면서도 꿋꿋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당대 양반층과 서민층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인기를 누렸으며, 그의 예술적 위상은 후대 명창들이 그를 중고제의 시조격으로 추앙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는 판소리가 단순한 민속 예술에서 체계적인 음악 장르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술적 계보 측면에서 복재인은 전기 8명창으로 꼽히는 염계달(廉季達), 모흥갑(牟興甲)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스승이자 선배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창법과 음악적 이론은 김성옥, 방만춘 등을 거쳐 근대 판소리로 계승되었으며, 이는 충청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고제 소리의 원류가 되었다. 비록 그가 직접 남긴 음원은 없으나, 문헌과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위상은 한국 음악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복재인은 충청도 판소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고향인 홍성군을 중심으로 그를 기리는 연구와 현창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멸실 위기에 처했던 중고제 판소리의 복원과 전승에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복재인이 확립한 초기 중고제의 법도는 현대 판소리 연구와 국악의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그 가치를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