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法正, 176년 ~ 220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자는 효직(孝直)이며 예주 부풍군 출신이다. 본래 익주목 유장의 밑에서 신임을 받지 못하고 하급 관직을 전전하다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장송과 함께 유비를 익주로 불러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에는 외군사사무군군사(外軍師署左將軍府事)에 임명되어 군사와 정치를 아우르는 유비의 핵심 참모로 급부상했다.
법정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조조의 세력이 한중을 점령한 후 본국으로 철수한 틈을 타 한중을 공략해야 한다는 전략적 조언을 건넸다. 특히 219년 정군산 전투에서는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고 적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전술을 제안하여, 위나라의 명장 하후연을 전사시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 승리를 통해 유비는 한중왕에 등극하며 촉한 건국의 기틀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성격 면에서 법정은 매우 냉혹하고 분명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권력을 잡은 후 과거 자신에게 작은 은혜라도 베푼 자에게는 반드시 보답했으나, 사소한 원한이라도 있는 자에게는 철저히 복수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독단적인 태도에 대해 일부 신료들이 제갈량에게 처벌을 건의했으나, 제갈량은 유비가 법정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그의 지략이 국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묵인했다. 이는 법정이 유비의 총애를 받는 동시에 제갈량과도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특수한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법정은 한중 평정 직후인 220년, 4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유비는 그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며 며칠 동안 통곡했고, 촉한의 신하 중 유일하게 시호를 내려 그를 익후(翼侯)라 칭하며 예우했다. 훗날 유비가 이릉 대전에서 오나라의 육손에게 대패했을 때, 제갈량은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주상을 만류했을 것이고, 설령 동쪽으로 나아갔더라도 이토록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의 부재를 뼈저리게 한탄했다. 이는 법정의 전략적 안목이 촉한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독보적이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