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와 숙제는 중국 상나라 말기 고죽국 왕의 두 아들로, 동양사상에서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고죽국의 왕은 차남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부친이 사망한 후 숙제는 장남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했다. 그러나 백이는 부친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하고 나라를 떠났으며, 숙제 또한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를 수 없다며 형의 뒤를 따라갔다. 이로 인해 두 형제는 모두 왕위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주나라의 문왕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갔으나, 당시 문왕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이 상나라의 주왕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상태였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 고삐를 붙잡으며, 부친의 장례도 끝나기 전에 전쟁을 치르는 것은 효가 아니며 신하가 임금을 치는 것은 인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강력히 간언하였다. 하지만 무왕은 이들의 말을 듣지 않고 상나라를 멸망시킨 뒤 주나라를 건국하였다.
무왕이 천하를 평정한 후 주나라의 세상이 되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그 땅에서 나는 곡식조차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이때 이들은 자신들의 심경을 담은 '채미가'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는 주나라의 세상에서 풀 한 포기조차 주나라의 것이니 이를 먹는 것조차 부끄럽다는 절개와 한탄을 담고 있다.
결국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사마천은 자신의 저서 『사기』의 「열전」을 저술하며 그 첫머리에 백이와 숙제를 배치하였다. 사마천은 이들의 삶을 통해 착한 사람이 고난을 겪고 악한 사람이 득세하는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변치 않는 인간의 고결한 지조가 무엇인지를 조명하고자 했다.
이후 백이와 숙제는 유교 문화권에서 충성과 절개의 화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특히 한국의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이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청렴한 정신의 사표가 되었다. 단종의 폐위에 항거하며 절개를 지킨 사육신 등의 인물들이 이들의 고사에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시를 짓기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권력이나 이익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상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