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승(白樂勝, 1865년 ~ 1940년)은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정치인,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유명하다. 그는 1865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부터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백낙승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의 창립 등에 깊이 관여하며,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백낙승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며, 동아일보의 창간에도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 민족의 독립과 자주성을 주장하는 데 힘썼다. 그의 저술 활동은 한국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폭로하고, 한국 민중의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상해 임시정부의 일부로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백낙승은 국제 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많은 외국 지도자들과 접촉하여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전선인 해외에서의 외교적 노력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삶은 단순히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현대화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회운동가로서의 역량도 품고 있었다. 그는 사회 개혁과 교육 혁신을 통해 한국 민중의 자주성을 강화하고자 했으며,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평등에 대한 관심도 보였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은 그가 남긴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