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성(朴昌成, 1896~1924)은 일제강점기 당시 평안도와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평안북도 운산 출신이다. 그는 조국 광복을 위해 무장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 기구 파괴와 친일파 숙청 등 강도 높은 항일 운동에 투신하였다.
박창성은 1920년대 초반 평안북도 의주의 천마산을 근거지로 조직된 항일 무장 단체인 천마산대(天摩山隊)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는 최시흥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부대로, 산간 지형을 활용해 유격전을 펼치며 일본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통신망을 차단하는 등 일제의 행정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뛰어난 용맹함을 보여주며 핵심 대원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천마산대가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인해 만주로 거점을 옮기게 되자, 박창성 또한 만주로 이동하여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산하의 영경대(寧境隊)에 합류하였다. 그는 영경대의 대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진입 작전을 수차례 전개하였다. 특히 일제의 경제적 수탈 기반인 부전강 수력발전소 공사 현장을 습격하여 일본인 기술자와 경비 인력을 제압하고 공사에 타격을 입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1924년 박창성은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기관을 파괴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일본 경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그는 일제의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며, 같은 해 12월 7일 평양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그의 항거는 당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창성의 삶은 가장 엄혹했던 시기에 무장 투쟁이라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일제에 맞선 민족의 결기를 상징하며, 오늘날까지도 평안도 지역 무장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