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기(朴五基, 1873~1953)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밀양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여성으로서 구국 운동에 헌신하며 지역 사회의 독립 의지를 고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19년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들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밀양에서도 만세 운동의 기운이 고조되었다. 박오기는 3월 13일 밀양 장날을 기해 일어난 대규모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밀양 장터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집결하였으며, 박오기는 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시위가 확산되자 일제는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무력 진압에 나섰다. 박오기는 시위 대열의 앞장서서 군중의 사기를 북돋우며 저항하다가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밀양경찰서에서 혹독한 취조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이후 박오기는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짧지 않은 수감 생활 동안 일제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국 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출옥 후에도 항일 정신을 간직하며 평생을 보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오기의 활동은 영남 지역 여성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이름 없는 민중과 여성이 주체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일제 식민 지배의 부당함에 맞섰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지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