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출(朴永出, 1908~1944)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영덕 출신인 그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재일 조선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는 민족의 해방과 함께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며 조직적인 저항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지역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일제의 노동 착취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를 계기로 노동 운동에 투신한 박영출은 일본 노동조합 전국협의회(전협) 산하의 화학노동조합 등에서 활동하며 재일 조선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노동 현장을 항일 투쟁의 거점으로 삼아 일제의 경제적 수탈 체제에 타격을 주고자 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 박영출은 국제적색구호기(MOPR) 일본지부의 조선인부에서 핵심 간부로 활동하였다. 그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투옥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구호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일제의 침략 정책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선전 활동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지하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재일 조선인 사회의 항일 동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1933년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인 이른바 '오사카 적색구호회 사건'으로 인해 박영출은 체포되었다.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가혹한 고문과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장기간 옥고를 치렀다. 모진 고문과 열악한 수감 환경으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그는 결국 조국의 광복을 목전에 둔 1944년 3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영출의 투쟁은 일본 현지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례로 꼽히며, 노동 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을 결합하여 일제의 통치 기반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