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길(朴秉吉, 1888~1960)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회양 출신인 그는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의 주요 활동은 1919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3·1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으며, 특히 강원도 지역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 강력히 저항하였다.
1919년 4월 초, 박병길은 강원도 회양군 회양면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시위의 조직과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회양군청과 경찰관 주재소 인근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 경찰의 무력 진압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체포 이후 박병길은 경성으로 이송되어 가혹한 취조를 받았다. 그는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수감 생활 중에도 그는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족의 해방을 향한 신념을 지켰다. 출옥 후에도 그는 일제의 감시 속에서 지역 사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광복 이후 박병길은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다 1960년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생애와 투쟁 기록은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명단에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그는 중앙의 지도부뿐만 아니라 지역 거점의 독립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병길의 활동은 일제의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기층 민중이 어떻게 독립 의지를 표출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특히 강원도라는 지리적 특성 속에서 전개된 그의 만세 운동은 지역 독립운동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평범한 군민으로서 국가의 위기 앞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그의 정신은 현대 한국 사회의 민족적 자긍심과 독립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