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현(독립운동가)

박도현(朴道鉉, 1891~1974)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경상북도 칠곡(漆谷) 출신이다. 그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특히 3·1 운동의 확산과 임시정부 지원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박도현은 고향인 칠곡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4월 2일 칠곡군 석전면(石田面)에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탄압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지역 사회에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일제 당국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3·1 운동 이후 박도현은 보다 조직적인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비밀 결사 단체인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1920년경부터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경상북도 일대를 돌며 자산가들을 설득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이를 상해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연락책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군자금 모집 활동 중 박도현은 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공갈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그는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항일 정신을 견지하며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절개를 지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도현의 생애와 활동은 지방 소도시에서의 조직적인 저항과 중앙 독립운동 기구와의 긴밀한 연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