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실(朴德實, 1902년 9월 22일 ~ 1944년 5월 3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일제강점기 한국의 여성 인권 신장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이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박덕실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으며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1902년 한국의 여성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박덕실은 전주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0년대에는 교사로 활동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덕실은 단순한 교육자에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단체와 연대하며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상해로 이주하여 임시정부와 연계된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하고, 이를 통해 독립 운동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여성의 참여를 촉구하였다. 또한, 그녀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박덕실의 활동은 단순히 정치적 독립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 여성의 지위 향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의 여성운동에도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박덕실은 1944년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술마리 격리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의 용기와 헌신은 한국의 여성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존경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