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식(1886)

민원식(閔元植, 1886~1921)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자 언론인으로,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하며 조선인의 참정권과 자치권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친일파 인물이다. 본관은 여흥이며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 사정에 밝았던 인물로, 구한말 관직을 거쳐 식민지 시기 내내 일본 제국의 논리를 전파하고 조선인의 완전한 일본화를 꾀하는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친일 논리를 확산시켰다. 《매일신보》의 부사장과 《시사신문》의 사장을 역임하면서 일제의 식민 정책을 옹호하는 글을 다수 기고했다. 민원식은 조선이 독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일본 제국의 일원이 되어 그 안에서 권리를 찾는 것이 조선인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는 훗날 '내선일체'와 '동조동근론'의 기초적인 형태와 맞닿아 있었다.

민원식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은 참정권 청원 운동이었다. 그는 1921년 국민협회(國民協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취임하여, 조선인에게도 일본 의회의 의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달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체제 안에서 타협적인 권익을 얻으려는 행위였다. 그는 이를 위해 여러 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계 인사들을 만나며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조직적인 친일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민원식의 행보는 당시 독립을 염원하던 민족 진영으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샀다. 독립운동가들은 그의 참정권 운동을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고 일제의 영구 지배를 돕는 반역 행위로 규정했다. 특히 3·1 운동 이후 민족의 자결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일제의 통치 체제 내로 편입되려는 그의 시도는 용납될 수 없는 배신으로 여겨졌다.

결국 민원식은 1921년 2월, 참정권 청원을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하던 중 제국호텔에서 독립운동가 양근환(梁槿煥)에게 피습당했다. 양근환은 민원식을 민족의 반역자로 처단하기 위해 단도로 그를 공격했으며, 민원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튿날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당시 친일파들에게 큰 경종을 울렸으며, 오늘날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수록되어 역사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