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諡號) '무(武)'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군주나 고위 관직자가 서거한 뒤 그의 생전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붙였던 명칭 중 하나이다. 주로 군사적 업적이 탁월하거나 국가의 위기를 무력으로 극복하고 영토를 확장한 인물에게 부여되었다. '무'라는 글자가 지닌 의미 그대로 강력한 군사력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국난을 타개했거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통치자들의 전형적인 시호로 자리 잡았다.
시호법(諡號法)에 따르면 '무'를 부여하는 기준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위엄이 있고 강직하며 도리에 곧은 것(剛強直理), 재앙을 물리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 것(威強睿德), 적의 침입을 막아내고 굴복시킨 것(折衝御侮), 영토를 넓히고 백성을 안정시킨 것(克定禍亂) 등이 그 주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이 시호를 받은 인물은 단순히 전쟁을 즐긴 자가 아니라,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고 대외적인 권위를 세운 인물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유철이다. 그는 흉노를 정벌하여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서역으로 통하는 비단길을 개척하는 등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의 시호 '무'는 광활한 영토 확장과 제국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를 상징한다. 또한 주나라의 무왕(武王) 역시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한 창업 군주로서 이 시호를 받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한국 역사에서도 '무'라는 시호를 사용한 군주들이 존재한다. 백제의 무왕(武王)은 신라와의 치열한 전쟁을 통해 국력을 과시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했던 인물이다. 신라의 태종 무열왕(武烈王)은 비록 '무' 단독 시호는 아니나,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군사적 공로를 인정받아 '무'가 포함된 시호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국가적 변혁기나 전쟁의 시기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시호 '무'는 사후에 부여되는 평가라는 점에서 당대 사회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통치자상 중 하나를 반영한다. 이는 문치(文治)를 상징하는 '문(文)'과 대조를 이루며, 국가의 생존이 위협받거나 영토 확장이 절실했던 시기에 특히 중시되었다. '무'의 시호를 가진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강한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의지와 그 과정에서 수반된 군사적 성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들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