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미설화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의 지명 유래와 관련된 전설로, 고려 의종 때의 문신 정서(鄭敍)의 유배 생활을 배경으로 한다. '망미(望美)'라는 명칭은 '임금을 그리워하며 바라본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는 정서가 유배지에서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을 보였던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 설화는 단순한 지명 유래를 넘어 한 인물의 충절과 문학적 성취를 동시에 포괄하고 있다.
정서는 고려 인종의 동서이자 의종의 이모부로, 당시 권력 싸움에 휘말려 1151년(의종 5)에 고향인 동래로 유배되었다. 의종은 그를 보내며 곧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이에 정서는 매일같이 산에 올라 임금이 있는 개경 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부름을 기다렸다고 전해진다.
그가 매일같이 올라가 임금을 그리워하던 장소가 지금의 망미산이며, 그가 앉아 있던 바위는 '배련대(拜蓮臺)'라고 불린다. 그는 이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임금이 있는 북쪽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며 자신의 결백과 그리움을 달랬다. 이러한 정서의 간절한 행위가 지역 사회에 구전되면서 훗날 이 지역의 이름이 망미동으로 불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망미설화는 한국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서가 유배지에서 임금을 향한 그리움과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은 노래가 바로 '정과정곡(鄭瓜亭曲)'이기 때문이다. 이는 고려가요 중 작가와 제작 배경이 확실하게 전해지는 유일한 작품으로,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설화 속 정서의 기다림은 단순한 전설을 넘어 문학적 가치로 승화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일대에는 정서의 유배지와 관련된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수영구에서는 정과정 유적지를 조성하고 정과정공원을 운영하며 이 설화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있다. 망미설화는 한 인물의 충절과 기다림이 지명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정착된 사례이며, 부산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비 전승 자료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