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봉천 예비간호사 살인사건은 1965년 9월 서울 용산구 원효로 인근의 만봉천에서 발생한 잔인한 토막 살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전도유망한 여대생이 살해된 채 발견되어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범죄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그리고 범인의 이중생활이 드러나며 당시 언론과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1965년 9월 12일, 만봉천 하수구 인근에서 가마니에 싸인 여인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다. 발견된 시신은 머리와 팔다리가 절단된 처참한 상태였으며, 경찰은 시신의 지문 감식과 유류품 확인을 통해 피해자가 당시 21세였던 김경희임을 밝혀냈다. 피해자는 지적이고 성실한 학생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슬픔을 자아냈다.
경찰은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하던 중, 그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김근하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김근하는 피해자의 중학교 시절 과외 교사였으며, 사건 당시에는 이미 아내와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피해자와 부적절한 내연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경찰의 끈질긴 추궁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범행의 직접적인 동기는 치정 문제와 신분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김근하는 피해자가 임신 사실을 알리며 결혼을 요구하자, 자신의 이중생활이 탄로나 사회적 지위와 가정이 파괴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9월 10일 밤, 피해자를 서울의 한 여관으로 유인해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토막 내어 만봉천 등지에 유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근하의 잔혹하고 치밀한 범행 수법이 낱낱이 드러나자 국민적인 분노가 들끓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은 1960년대 한국 범죄사에서 가장 엽기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인간의 집착과 이기심이 불러온 비극적인 참상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