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 1543년 5월 7일 ~ 1605년 9월 27일)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후에 에도 시대 초기의 정치가로, 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로 알려져 있다. 그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활동하며, 주로 일본 북부 지역인 에치젠(越前) 지방에서 세력을 확장하였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뢰를 얻어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1582년의 본능寺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의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도요토미 정권 하에서의 정치적 요직을 차지하며, 에치젠의 영주로서 통치하였다.
그의 통치 아래, 마에다 가문은 일본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가문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지역 경제 발전과 함께 문화에도 기여하였으며, 특히 에치젠 지역의 다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후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토시이에는 1605년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들 마에다 토시나리(前田 利長)가 그의 뒤를 이어 에치젠 지역을 통치하였다. 마에다 가문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해서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많은 후속 작품이나 매체에서 그의 전투 및 정치적 업적으로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