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 1543년 ~ 1605년)는 일본의 전국 시대와 에도 시대 초기에 활동한 무장으로, 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로 알려져 있다. 그의 출생지는 에치젠(越前) 지역으로, 마에다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토시이에는 젊은 시절부터 무사로서의 경력을 쌓아갔고, 그의 예리한 전투 전략과 뛰어난 전투 능력 덕분에 여러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수많은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중요한 부하로서 활동하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는 '세키가하라 전투'로, 이 전투에서는 당초 히데요시의 적군인 이시다 미츠나리의 군과 맞붙었다. 전투 결과, 히데요시 측의 승리는 그가 전투에서 보여준 용기와 전략 덕분이었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승리 이후 히데요시에게 깊은 신뢰를 받으며, 재산과 권력을 크게 확대하게 된다.
토시이에는 혼슈 지역에서 점차적으로 정치적 입지를 넓혔고, 특히 가나자와 성(金沢城)의 건축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가나자와는 문화적으로도 번영하여, 다이묘 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게 된다. 또한, 그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장려하여, 후에 가나자와 지역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중심지 중 하나로 발전하게 된다.
토시이에는 그의 자녀들, 특히 그의 아들인 마에다 토시나가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마에다 가문은 그의 뒤를 이어 에도 시대에 강력한 다이묘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겼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그의 전투와 정치적 재능, 문화적 기여 덕분에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