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 덴노(履中天皇)는 일본의 제17대 천황으로, 제16대 닌토쿠 천황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와노히메이다. 휘는 오오에노 이자호와케노 미코토(大兄去来穂別尊)라 하며, 전설적인 기록에 따르면 서기 400년부터 405년까지 재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닌토쿠 천황의 뒤를 이어 야마토 정권의 기틀을 다진 초기 군주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즉위 전 리추 덴노는 형제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겪었다. 부친인 닌토쿠 천황이 서거한 후 동생인 스미노에노 나카쓰 미코가 반란을 일으켜 리추 덴노의 거처에 불을 지르고 그를 살해하려 했다. 리추 덴노는 가까스로 탈출하여 야마토로 피신했으며, 또 다른 동생인 미즈하와케(훗날의 한제이 천황)의 도움을 받아 반란군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재위 기간 중 리추 덴노는 국가 행정 체제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그는 각 지방의 기록과 국고를 관리하기 위해 장부(蔵部)와 문부(文部)를 설치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자산과 역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중요한 변화로 평가받는다. 또한 수도를 이와레의 와카자쿠라노미야로 옮겨 통치 중심지를 새롭게 구축하였다.
리추 덴노는 재위 6년 만에 병으로 서거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동생인 한제이 천황이 즉위하였으며, 리추 덴노의 직계 아들들은 즉시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손자인 겐조 천황과 닌켄 천황이 차례로 즉위하면서 그의 혈통은 다시 천황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대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리추 덴노를 중국의 『송서』에 기록된 '왜오왕' 중 첫 번째 인물인 '찬(讃)'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비록 고대 기록의 특성상 정확한 연대나 행적에 대해서는 이설이 존재하지만, 그가 다스리던 시기가 야마토 정권의 권위가 확립되고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로 이행하던 과도기적 단계였음은 분명하다. 그의 능은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위치한 가미이시즈 미산자이 고분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