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25~1984)은 웨일스 출신의 영국 배우로, 20세기 대중문화사와 연극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특유의 깊고 울림이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강렬한 눈빛, 그리고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셰익스피어 극에 대한 깊은 이해와 표현력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본명이 리처드 월터 제킨스였던 그는 가난한 광부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 필립 버튼의 도움을 받아 연기자로 성장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그의 성을 따서 예명을 지었으며,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올드 빅 극단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연극 '햄릿'에서의 열연을 통해 영국의 차세대 대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힌 리처드 버튼은 '성의', '클레오파트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베켓' 등 수많은 명작에 출연했다. 그는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생애 총 일곱 차례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비운의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와 문학적인 대사 소화 능력은 후대 배우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리처드 버튼의 사생활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관계이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 만난 두 사람은 세기의 로맨스로 불리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이들의 불꽃 같은 관계는 대중 매체의 끊임없는 관심을 받았으며, 두 사람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예술적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말년의 리처드 버튼은 고질적인 알코올 중독과 건강 악화로 고통받았으나,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그는 1984년 스위스 셀리니에서 뇌출혈로 급서하기 전까지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활동을 이어갔다. 비록 사생활에서의 부침과 수상이 비껴간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예술적 자취와 독보적인 음성은 오늘날까지도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