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가 1953년부터 연재한 만화 '리본의 기사'는 일본 만화사에서 현대적인 소녀 만화의 기틀을 마련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잡지 '소녀 클럽'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왕자로 자라야만 했던 공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사 구조를 갖춘 최초의 스토리 만화 형식의 소녀 만화로 평가받으며, 이후 등장한 수많은 소녀 만화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작품의 주인공 사파이어는 실버랜드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으나, 여자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국법 때문에 남자로 위장하여 왕자로 성장하게 된다. 사파이어가 태어날 때 천사 친크의 실수로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는 설정이 서사의 핵심이다. 사파이어는 겉으로는 씩씩한 기사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으로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왕위를 노리는 악당 듀랄루민 대공 일당의 음모에 맞서 싸운다.
'리본의 기사'는 데즈카 오사무가 유년 시절 거주했던 다카라즈카시의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에서 큰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여성이 남성 역할을 연기하는 가극단의 특징이 사파이어라는 캐릭터에 투영되었으며, 화려한 복식과 이국적인 배경 설정 역시 가극단의 연출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둥글고 부드러운 화풍과 역동적인 칸 연출은 당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젠더 정체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사파이어의 모습은 단순한 모험극을 넘어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질문하게 한다. 비록 결말부에서 당대의 한계로 인해 보수적인 성 역할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여성 기사 캐릭터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
1967년에는 무시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한국을 포함한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방영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리본의 기사'가 확립한 '남장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이후 '베르사유의 장미', '소녀혁명 우테나' 등 수많은 후속 작품으로 계승되었다. 이처럼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고전으로 남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소녀 만화의 장르적 문법을 정의하는 중요한 준거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