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무어

르무어(Lemures)는 고대 로마 신화와 종교에서 죽은 자들의 원혼이나 공포스러운 망령을 가리키는 존재다. 로마인들은 사후 세계로 평온하게 떠나지 못하거나 적절한 장례 의식을 치르지 못한 영혼들이 르무어가 되어 산 자들의 세계를 떠돈다고 믿었다. 이들은 대개 악의적이고 형체가 불분명한 유령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가족을 수호하는 선량한 조상신인 '라레스(Lares)'나 일반적인 망자의 신인 '마네스(Manes)'와는 대조되는 성격을 지닌다.

르무어는 주로 밤에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질병을 퍼뜨리고 가옥을 어지럽히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은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었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자들이기에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강한 질투심과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 간주되었다. 로마인들은 르무어가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으며, 이들이 가족의 안녕을 해치지 않도록 달래거나 쫓아내기 위한 특정한 의례를 정기적으로 수행했다.

르무어를 진정시키기 위해 매년 5월에는 '르무리아(Lemuria)'라는 축제가 열렸다. 5월 9일, 11일, 13일에 걸쳐 진행된 이 축제 기간 동안 로마인들은 불운을 피하기 위해 결혼식과 같은 경사를 금기시했으며 모든 신전의 문을 닫았다. 르무리아 축제의 기원은 로마의 건국 시조 로물루스가 자신이 죽인 형제 레무스(Remus)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초기에는 '레무리아'라고 불리기도 했다.

르무리아 축제의 핵심 의식은 각 가정의 가장(Pater Familias)에 의해 자정에 수행되었다. 가장은 맨발로 집 안을 걸으며 손을 씻은 뒤, 입에 검은 콩을 물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콩을 던지며 "이 콩으로 나와 나의 가족을 구하노라"라는 주문을 아홉 번 외웠다. 로마인들은 르무어가 던져진 콩을 줍는 동안 집에서 떠나간다고 믿었으며, 마지막에는 청동 그릇을 두드려 소란을 피움으로써 망령들이 집 밖으로 완전히 물러나도록 유도했다.

르무어에 대한 신앙은 고대 로마인들의 사후 세계관과 조상 숭배의 이면을 잘 보여준다. 죽음을 단순히 끝으로 보지 않고 산 자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위협적인 요소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후 르무어라는 명칭은 생물학에서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Lemur)'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이는 여우원숭이의 커다란 눈과 밤에 활동하는 습성, 그리고 기괴한 울음소리가 마치 로마 신화 속 유령과 같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