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사 지도자로, 기원전 138년경에 태어났고 기원전 78년에 사망했다. 그는 로마 공화국 시기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며, 특히 그의 독재적 통치와 여러 군사 캠페인으로 알려져 있다. 술라는 로마 역사에서 내전과 권력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로, 그의 생애와 정치적 행동은 후에 로마 제국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술라는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고, 이후 풀리기 사건에서의 승리로 인해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원전 91년부터 88년까지의 사회 전쟁에서의 성공은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기원전 88년에는 아시아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마리우스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며, 기원전 82년에 로마의 독재자로 선언되었다. 그의 독재 하에 로마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군사적, 경제적 안정성을 찾았다.
술라는 독재자로서의 재임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의 가장 눈에 띄는 개혁 중 하나는 원로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평민 귀족층을 제한함으로써 로마 정치체제를 재편성한 것이다. 이러한 개혁은 술라가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강화하고, 향후 그의 후계자들이 그를 따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많은 고위 정치인들과 일반 민중들에게 저항을 일으키기도 했다.
술라는 1차 삼두 정치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정치적 유산은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로마 역사에서 그는 군사적 승리와 정치적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그의 잔혹한 정치적 정적 처리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쟁과 내전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술라는 로마 역사에서 그늘진 주인공으로 회자되며, 그의 생애는 로마 공화국의 격동의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례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