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플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구상한 대외 정책 및 전후 처리 구상을 의미한다. 이는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 연맹의 한계를 극복하고, 강력한 국제 기구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루스벨트는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전쟁 중반기부터 전후 세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 구상의 핵심은 '네 명의 경찰관(Four Policemen)' 이론이다. 루스벨트는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네 강대국이 각자의 영향권 내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전 세계적인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 국가가 국제 평화 유지의 중심축이 되어 침략 행위를 사전에 억제하고 군비 축소를 유도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개념은 훗날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체제로 구체화되었다.
또한 루스벨트 플랜은 식민지 지배의 점진적 종식과 신탁통치(Trusteeship)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기존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지배가 국제적 불안정을 초래한다고 판단하여, 피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할 역량을 갖출 때까지 주요 강대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과도기적 체제를 제안했다. 이는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와 냉전의 발발로 인해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전후 패전국 처리에 있어서 루스벨트는 독일과 일본의 완전한 무장 해제와 민주화를 강조했다. 특히 독일의 경우, 다시는 군사적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산업 능력을 제한하고 분할 점령하여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루스벨트는 이러한 강력한 통제를 통해 추축국 세력이 국제 질서를 다시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정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이는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 등의 주요 연합국 회의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루스벨트 플랜은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뒤이은 냉전 체제의 형성으로 인해 계획했던 모습 그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국제연합의 창설과 다자간 협력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대 국제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한 전후 복구를 넘어 자유무역의 확대와 집단 안보 체제를 지향함으로써 현대 세계 질서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역사적 토대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