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는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사회에서 상호 협력과 공동 노동을 위해 조직된 자생적인 작업 공동체이다. 주로 모내기나 김매기와 같이 단기간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농번기에 마을 단위로 결성되어 운영되었다. 두레는 단순한 노동 교환 형식을 넘어 마을 전체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으며, 구성원 간의 평등과 상호 부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두레의 조직 구성은 마을의 성인 남성을 주축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엄격한 위계 질서와 규율을 갖추고 있었다.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인 '영좌' 또는 '행수'를 선출하여 작업을 지휘하게 했으며, 그 아래에 실무를 담당하는 임원들을 두어 효율적인 작업 배분과 관리를 도모했다. 두레에 참여하는 것은 마을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로 간주되었으며, 노동력의 제공이 어려운 구성원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노동을 대신하기도 했다.
두레는 노동의 고됨을 덜고 작업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농악(풍물)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작업 현장으로 이동하거나 일을 할 때 농악대가 흥을 돋우어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고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고취시켰다. 이러한 농악은 단순한 노동요의 기능을 넘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적인 성격을 띠기도 했으며, 두레가 끝난 후에는 마을 잔치로 이어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축제의 장이 되기도 했다.
두레와 유사한 노동 관행으로 '품앗이'가 있으나, 두레는 품앗이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품앗이가 개인 대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 간의 노동력 교환으로 1:1의 등가성을 원칙으로 하는 사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두레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 움직이는 공동체적이고 강제성을 띤 조직이었다. 두레는 공동 경작을 통해 얻은 수익을 마을의 공동 기금으로 적립하여 공공사업이나 빈민 구제 등에 사용하기도 했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농업 기계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전통적인 두레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농업 구조 속에서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는 두레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레가 지니고 있던 상호 부조와 공동체 정신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재조명받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문화 보존의 일환으로 두레 소리나 두레 굿 등의 무형 유산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