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董卓)는 중국 후한 말기의 권신이자 군사적 지도자로, 역사적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그는 139년 경에 태어나, 관중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동우는 젊은 시절부터 군사적 재능을 보였으며, 후한 말기에 여러 차례 군사 작전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결국 그는 189년에 후한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그의 집권기에 왕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동우는 실권을 쥐고 있는 환관들과 손잡아 황제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대를 조직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동우는 젊은 황제인 헌제를 이용하여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자신의 야망을 펼치며 후한 정부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했다.
동우의 통치 방식은 폭정과 폭력을 동반하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반대 세력을 제거하였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인재와 장수들이 그에게 반발하였다. 그의 정치는 고통받는 백성들의 불만을 샀고, 이는 후에 동우에게 반대하는 여러 군벌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유비, 관우, 장비 등과 같은 인물들이 동우의 폭정에 저항하기 위해 결성한 맹장군 연합의 탄생은 그가 궁지에 몰리게 되는 전환점을 만든다.
결국 동우는 192년에 그의 부하인 리관(李獲)의 배반으로 암살당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후한 말기의 혼란을 가속화시켰으며, 삼국지 시대의 서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동우는 자신의 폭정과 권력 장악의 영향으로 인해 역사 속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으며, 그의 이야기는 후대 문학과 예술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