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서궁의 난(東宮-西宮之亂)은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일어난 조선의 정치적 사건으로, 동궁과 서궁의 권력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 왕정의 권력 구조와 정치적 불안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
동궁은 왕세자의 거처를 의미하며, 서궁은 왕비와 그의 가족이 거주하는 궁전을 뜻한다. 이 사건은 당시 왕세자 이지(후의 고종)와 그의 아내인 명성황후 간의 권력 다툼이 중심이 되었다. 명성황후는 외척 세력과 밀약을 맺고 세력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동궁 측은 개혁을 지향하는 정치 세력과 결합하여 권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1894년, 동궁의 세력이 서궁의 세력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갈등은 격화되었다. 동궁 측은 개화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과 협력하여 서궁의 권력을 견제하고자 했고, 이로 인해 조선 정부는 내홍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정부 관료와 군인들이 개입하였고, 고종은 두 세력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이 사건은 일제의 간섭과 영향을 받게 되면서 조선의 정치 상황에 복합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동궁-서궁의 난은 조선 왕실의 정치적 약화를 심화시키고, 이후의 정치적 갈등과 외세 개입의 배경이 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 후기에 있어서 정치적 세력 다툼의 상징적 사건으로 여겨지며,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