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우(道光吳)는 청나라 제6대 황제인 도광제(道光帝)의 이름으로, 본명은 휘(奕詝, 예철)이다. 그는 1820년부터 1850년까지 통치하였으며, 그의 통치 기간은 청나라의 쇠퇴와 서구 열강의 압박이 가해지던 시기로 평가된다. 도광제는 영조와 건륭제의 후계자로서,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고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도광제는 비교적 평화로운 초기 통치 시기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그는 무역과 외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1839년 아편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로 인해 청나라는 대영제국과의 전투에서 참패하게 된다. 이 전쟁은 청나라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후 불평등 조약의 체결로 이어져 청나라는 많은 영토와 권리를 잃게 된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사회적 불안과 반란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태평천국운동이 그중 하나로, 이는 1850년부터 1864년까지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반란이다. 도광제의 행정력은 이러한 반란에 대한 대응을 통해 시험대에 올랐고, 그는 군대와 지방 관리를 통해 반란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였다.
도광제는 또한 문화와 교육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를 개선하고,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유학과 과학 기술 교육을 장려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차세대 인재 양성과 청나라의 내정 안정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 말기에는 중국 내부의 차별적 사회 구조와 외부의 압력이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었고, 이는 청나라의 쇠퇴를 의미하는 징후로 해석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