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또는 다래)는 한국 전통 여성의 머리 모양을 꾸밀 때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거나 머리 형태를 크게 만들기 위해 본래의 머리카락에 덧붙였던 가공된 머리카락 뭉치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풍성하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미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카락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화려하고 거대한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타인의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더리를 사용하였다. 이는 단순한 장식물을 넘어 사용자의 신분과 격식을 나타내는 상징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더리는 용도와 형태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머리 위에 높게 쌓아 올리는 ‘얹은머리’나 궁중의 예복 차림에 쓰이는 ‘큰머리(거두미)’를 만들 때 사용한 것이다. 특히 혼례나 국가적 연희와 같은 특별한 행사에서 부녀자들은 더리를 이용하여 머리 부피를 극대화함으로써 예법을 갖추고 위엄을 드러냈다. 초기에는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더리를 겹겹이 쌓아 올렸으나, 그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워 목 뼈에 무리를 주는 등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여 후에 나무로 모양을 본뜬 ‘떠구지’ 등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더리의 재료가 되는 인모(人毛)는 당시 매우 귀하고 고가인 물품이었기에, 더리는 부와 권력의 척도가 되었다.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더 크고 화려한 더리를 선호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가산이 휘청거릴 정도의 사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조선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사치 풍조를 억제하기 위해 가체 금지령(加髺禁止令)을 내려 더리의 사용을 제한하고, 대신 쪽머리에 비녀를 꽂는 간소한 형태를 장려하는 등 복식 개혁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더리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는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었다. 머리카락을 깨끗이 세척한 뒤 일정한 길이로 맞추어 땋거나 엮어서 모양을 잡았으며, 동백기름 등을 발라 윤기를 내어 보관하였다. 이렇게 정성껏 만든 더리는 가문의 중요한 재산으로 여겨져 대를 이어 물려주거나 혼수 품목의 핵심으로 준비되기도 했다. 오늘날 더리는 실생활에서 사용되지는 않지만, 사극이나 전통 혼례, 민속 공연 등을 통해 한국 전통 미의식과 복식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