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주(黃巾賊)는 중국 후한 말기에 활동했던 반란 집단으로, 주로 농민과 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집단은 184년에 발발한 황건적의 난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후한의 부패한 정부와 지주들의 착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당주는 '황건'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란 띠를 두르고 다니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노란 띠의 봉기'라고도 불리는 반란을 통해 사회 불만을 표출하며, 후한의 통치에 도전하였다.
당주의 주요 지도자인 장각은 도교의 신비한 힘을 주장하며 많은 추종자를 모았다. 그는 자신을 '천제(天帝)의 사자'로 자처하며 민중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 당주가 단순한 무장 반란이 아니라 종교적 요소를 포함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했다. 장각의 형제인 장범과 장각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반란을 이끌었다. 이들은 제무(弟兄)의 결속을 강조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여러 약속과 선전활동을 펼쳤다.
당주는 처음에는 성공적인 반란을 일으키며 지역을 점령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후한의 군대와 지역의 강력한 세력들에 의해 점차 제압되기 시작했다. 특히, 조조, 유비, 손권 등 후에 삼국지의 중심 인물로 알려진 군벌들이 당주를 진압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억압적인 대대적인 군사 작전으로 인해 당주는 빠르게 세력을 잃었고, 장각은 전투 중 사망하게 된다.
결국 당주(황건적)의 난은 후한 왕조의 붕괴와 삼국 시대의 발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란의 결과로 인해 중국은 몇 세기 동안 혼란과 분열의 시기를 겪게 되었고, 이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당주와 그들의 반란은 후에 많은 문헌과 역사적 서사에서 다루어지며, 중국 역사에서 농민 폭동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