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구(盧炳九, 1894년 1월 9일 ~ 1965년 12월 31일)는 한국의 사회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통해 지식인으로 성장하였다.
노병구는 1919년 3.1운동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이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어 독립운동에 필요한 법률적 지원과 행정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반일운동과 교육 운동에도 힘써, 민족 자각과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정치적 활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 각 분야에서의 민족의식 고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족 교육을 통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일제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그는 지조를 잃지 않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전쟁 등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사회 발전과 국가 재건을 위해 힘쓰며, 민주적 가치와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노병구의 업적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헌신과 희생은 후대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