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단(盧旦, 생몰년 미상)은 고려 초기 성종과 현종 대에 활약한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학식이 깊고 문장에 능하여 고려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교적 소양을 바탕으로 중앙 정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성종 재위 시절, 노단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어 국왕의 조서와 외교 문서를 기초하는 책임을 맡았다. 당시 고려는 유교 정치 이념을 도입하고 중앙 집권적 관제 개편을 단행하던 시기였으며, 노단은 문한(文翰)의 재능을 발휘하여 이러한 개혁 과정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현종 대에 이르러서는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거란의 침입으로 고려의 국방과 외교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는 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요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에 올랐으며, 국정을 총괄하는 고위직에서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는 관리로서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년에는 태자태사(太子太師)의 직함이 더해져 차기 국왕인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명예를 누렸다. 사망 후에는 그의 공적과 학덕을 기려 문명(文明)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이는 그가 문치(文治)와 외교에서 남긴 업적을 상징한다.
노단의 가문인 광주 노씨는 그를 기점으로 고려 사회에서 명문 거족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고위 관직에 진출하며 고려의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단은 고려 초기의 문벌 귀족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학문적 성취와 행정적 실무 능력을 겸비한 전형적인 유학자 관료의 모델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