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韓 活蘭, 1901년 8월 3일 ~ 1969년 1월 27일)은 한국의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 특히 근대 교육과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인물이다. 본명은 김선구(金善九)이며, 일제강점기 동안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한국 여성의 권리 신장에 힘썼다.
김활란은 190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20년대에 일본의 도쿄여자고등학교에 유학하여 교육 분야에서의 기초를 다졌다. 일본 유학 중에 그녀는 교육의 중요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가져갔다. 귀국 후, 그녀는 서울에서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를 세워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녀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의 초대 학장을 역임하면서 학교의 기틀을 다졌다. 김활란은 또한 한국전쟁 이후, 전후 복구와 사회 재건에 힘쓴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그녀는 사회의 여러 계층의 여성들이 교육과 직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며,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김활란은 여성 교육자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제고와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여러 단체와의 협력 속에 활동하였으며, 1950년대에는 국내외에서 열린 다양한 교육 관련 회의에 참석하여 한국 여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또한 그녀는 한국 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지속 가능한 교육적 접근 방식을 지지하였다.
김활란은 1969년 1월 27일에 별세하였으며, 그녀의 업적은 한국 여성 교육 및 사회 운동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남아 있다.